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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공동경비구역 JSA, 2000 -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

아이스얼그레이 2023. 1. 12. 19:57

공동경비구역 JSA, 2000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영화입니다. 2000년에 개봉했고, 젊은 날의 이병헌, 송강호, 신하균, 이영애를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판문점의 공동경비구역 (Joint Security Area)이며 Joint, Security, Area로 챕터를 나눠서 진행됩니다.

 

영화는 JSA의 경비초소에서 북한군이 권총에 맞아 살해된 사건을 조명하며 진행됩니다. 이 사건의 남한 측 생존자 이수현 병장(이병헌)과 북한 측 생존자 양경철 상사(송강호)를 취조하기 위해 중립국인 스위스에서 소피 장 소령(이영애)이 JSA로 발령됩니다. 하지만 계속된 취조에도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둘 다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뭔가 정신적으로 불안해 보이게 연출됐습니다.

 

이때 소피 장 소령은 수현과 함께 초소근무를 섰던 남성식 일병(김태우)을 취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건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시퀀스를 보여주면서 영화가 진행됩니다. 중간중간 현재 시점의 소피 장 소령이 수사를 진행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듯 합니다.

 

영화 상에서 수현은 상당히 비범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돌멩이를 던져서 맞은편 북한군 초소의 유리창을 박살 냈다거나, 무리에서 낙오되고 지뢰를 밟았지만 4시간만에 부대로 무사히 복귀했다거나 이런 에피소드들이 나오는데 실상은 이랬습니다.

 

부대원들과 갈대밭을 수색하던 중 갈대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수현은 무리에서 낙오돼고 지뢰를 밟습니다. 여기까지는 맞는 말인데, 그때 우연히 강아지를 데리러 온 북한군 2명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양경철 상사와 남성식 일병이었고, 잠깐의 대치 후에 경철은 수현의 지뢰를 해체해 주고 그 지뢰를 기념으로 줍니다.

 

그 후 둘은 묘한 친밀감이 생기게 되고 초소 사이에 다리를 두고 쪽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해 알아갑니다. 이때 쪽지를 던져서 건네주다가 북한군 초소의 유리창이 부서졌는데, 이를 화난 수현이 유리창을 박살 냈다고 와전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수현은 선을 넘고 맙니다. 군사분계선이 있는 다리를 건너서 경철과 정우진 전사(신하균)를 만나러 갑니다. 직접 만난 그들은 더더욱 친해졌고 서로 형이라고 부르는 사이가 됩니다. 그리고 함께 초소근무를 하는 성식도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남북 병사 4명은 서로 막역한 사이가 됩니다.

 

하지만 초소근무를 내팽개쳐둔 채 맘 편하게 놀다가 순찰온 북한군에게 그 상황을 들키고 맙니다. 즉시 분위기는 싸늘해지고 서로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 채 대치합니다. 경철은 이 상황을 해결하겠다며 둘을 진정시키고 총구를 내리게 하지만, 성식은 방아쇠를 당기고 맙니다. 초소는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고 순찰온 북한군과 우진은 그 자리에서 즉사합니다. 하지만 경철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고 당신들은 우리에게 납치된 거라며 어서 여길 떠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어깨에 총을 맞기까지 합니다.

 

그 후 다시 시점은 소피 장 소령이 조사할 때로 돌아옵니다. 이 시점에서 소피는 JSA 발령이 취소됐고 스위스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거제도 수용소의 포로였던 북한군 장교였다는 점, 그녀가 성식을 조사하던 중 그가 투신자살을 시도한 점이 그 이유였습니다.

 

영화가 마무리되면서 사건의 진짜 진실을 관객에게 알려주는데, 사실 우진은 성식이 아닌 수현이 죽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수현은 성식이 죽였다고 진술했고, 죄책감때문인지 헌병의 권총을 빼앗아 수현이 자살하며 영화는 끝납니다.


언뜻 보기에 이 영화는 남북 분단 문제를 다룬 영화라고 보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이 영화에서 그러한 남북 분단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이데올로기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북은 수현과 성식, 경철과 우진 사이에 확실한 선을 그어놓기 위한 영화적 수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는 인간성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충분히 유리한 상황에서도 경철은 지뢰를 밟은 수현을 살려줍니다. 또한 남과 북이 소통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사경계선을 넘어온 모자를 주워서 넘겨줍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하를 죽인 성식과 수현에게 알리바이를 제공하면서 까지 둘을 살려주는 과도하게 휴머니즘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면 경철을 제외한 3명의 병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성을 저버린 선택을 하게 됩니다. 본인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죽인다거나, 본인의 범죄 사실을 끝까지 숨긴다거나 하는 행동 말이죠. 그리고 그에 대한 벌이라도 받는 듯이 영화가 끝을 향해 가면서 경철을 제외한 3명은 자살로든 타살로든 죽게 됩니다.

 

영화가 끝난 후 든 생각인데, 경철이 한 행동들이 동성 간의 사랑이라고 느껴질 만큼 수현에게 헌신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감독이 이 점을 의도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올드보이, 아가씨 등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메인스트림을 벗어난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러한 추측이 억측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수현과 우진이 판문점에서 마주 보며 경계근무를 설 때 서로 침을 뱉는 장면이 너무 웃겼고 기억에 남습니다. 이때 이병헌이 웃참하는 표정이 진짜 진심으로 웃긴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보는 저도 너무 웃겼습니다.

 

중학생 때 국어 교과서에서 이 영화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시나리오 일부를 발췌해서 보기도 했고 오래전이라 내용을 전혀 몰랐었는데, 굉장히 좋은 영화였습니다. 소재도 매우 참신했고, 영상 자체가 아주 교과서적이랄까요..? 저는 영상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 이론적인 내용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느꼈습니다. 여러모로 교과서에 실릴만한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